《월간 토마토》의 야심찬 장기 프로젝트 ‘대전여지도 시리즈’
그 두 번째 책, 동구편 출간
‘대전여지도 시리즈’는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은 한창기 선생의 《뿌리깊은 나무》가 선보인 ‘한국의 발견 시리즈’의 뒤를 잇는 야심찬 기획이다. 2007년 창간한 《월간 토마토》는 창간 초기부터 ‘대전여지도’라는 꼭지로 대전의 유래와 역사, 흔적을 찾아 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하고 있다. ‘대전여지도 시리즈’는 수도권 집중현상과 도시개발의 확대로 나날이 사라지는 토박이 문화와 지역 고유의 공간, 그 안에 둥지를 튼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마땅히 보존해야 할 것에 힘을 싣는 작업이기도 하다.
대전 중구의 마을들을 다루었던 《대전여지도1》에 이어 《대전여지도2》는 대전 동구의 마을을 담았다. 대전 동구는 충청북도 옥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대덕구와 중구를 접하고 있다. 동구의 동쪽에는 1980년 생성된 대청호가 자리해 있기도 하다. 《대전여지도2》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대청호 주변 마을과 골목이 여전히 살아 있는 오래된 마을, 개발 앞에서 사라져 가는 마을 등 동구의 22개 마을들을 만날 수 있다.
‘1부 물밑에 잠긴 마을의 이야기를 듣다’는 대청호 주변 마을의 모습을 담았다. 신하동, 직동, 주산동, 주촌동, 오동, 추동, 비룡동, 세천동은 대청호 인근에 자리한 마을로 수몰된 옛 마을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수몰로 고향을 잃고 새로운 터전을 갈고 닦은 마을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마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의 흔적을 살폈다. 대청호 주변 마을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금강의 비옥한 땅에 자리했던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그리움은 여전하다.
‘2부 골목 앞에서 큰 숨을 몰아쉬다’에서는 소제동, 신안동, 신흥동, 인동의 오랜 골목길이 살아 있는 마을들을 찾았다. 골목길에는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죽은 나무둥치에 밀려 무너지기 시작한 담장, 고물을 너무 많이 쌓아올려 터지기 일보 직전의 힘겨운 철문.” 골목길에서 마주친 시간이 내려앉은 풍경들이 소곤소곤 말을 건넨다.
‘3부 희미해져 가는 마을의 경계에 서다’는 사라져 가는 마을을 포착했다. 삼괴동, 소호동, 대별동, 구도동은 도시의 변방에 자리한 곳이다. 2006년에야 마을 안쪽까지 버스가 들어온 삼괴동 소룡골마을, 고속도로가 지나게 된 이후로 마을의 기운이 예전 같지 않은 대별동 도니골마을, 물류단지 공사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게 된 구도동 마을까지. 점차 사라져 가는 마을의 소중한 모습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새, 나무, 바위, 하천, 들녘, 하늘, 그리고 사람
대전 동구 22개 마을의 공간과 사람을 기록하다
저자 이용원 편집장은 대전이라는 지역에서 2007년부터 문화예술잡지 《월간토마토》를 창간하며 ‘대전여지도’라는 꼭지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자본의 때가 묻은 도시 곳곳에서 희미해진 마을을 찾아다닌다. 이 책은 여행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리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살이의 최소 주거 단위인 ‘마을’이라는 정겨운 무형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다가 맞닥뜨린 우연한 풍경이 소소하게 말을 걸고, 마을에서 마주친 마을 주민은 낯선 이에게 제 삶의 이야기를 조용조용 들려준다. 그곳에는 진짜 이야기가 있다.
획일화와 반대되는 ‘다름’과의 만남이다. 예상 밖의 풍경, 이 집과 저 집, 이 골목과 저 골목은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매순간 흥미롭다. 이는 길과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이름의 삶을 그리는 과정과 같다.
저자 이용원의 문장은 그런 골목길과 꼭 닮아 있다. 기자 특유의 절제되고 무심한 듯한 문장 속에 따뜻함이 공존한다. 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모든 것이 글의 대상이 된다. 마을 경로당을 지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느른한 시선이 있는가 하면, 골목에서 바라본 쨍한 푸른 하늘이 있고 또 개발로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오랜 삶터에 대한 애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