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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9호] 금산 청산아트시네마
“아. 이 영감들이 표 끊어준다고 해서 왔어.”
“우리 노래 교실 부회장님이 소개해 줘서 왔지~”
“아주 싸잖여. 시간도 남고 하니께 영화 하나 보려고 나왔지.”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 충남 금산군 금산읍 다락원, 청산회관 8층에 자리한 청산아트시네마다.
8월 20일 오후 두 시가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운다. 어림잡아본 평균 연령은 70세, 50여 명 정도 자리에 앉았다. 50대 후반부터 80대 중반까지 충남 금산군의 건강한 ‘실버’들이 모였다.

충남 금산군은 576.66㎢ 면적에 56,000여 명이 사는 소도시다. 대전광역시와는 자동차를 타고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대전과 가까워서인지 금산군에는 그 흔한 영화관 하나가 없다.
“영화관 없어진 지는 10년 정도 됐다는 것 같아요. 대형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개인 극장이었는데, 운영이 잘 안 되니까 문을 닫은 거죠. 동구 가오동까지 20분이에요. 영화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대전으로 나가면 되죠.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보려고 하잖아요. 또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에 남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이에요. 그분들은 비싼 돈 내고 영화 볼 일이 많지 않으니까 영화관 운영이 어려워졌죠. 그렇게 사라진 뒤로는 영화관이 없었어요.”
다락원 공연기획팀 조인호 음향감독의 이야기다. 상시 상영이 아니라 매달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영화를 상영한다. 입장료는 천 원이다. 8월 20일은 영화 <마부>를 상영했다. 영화 <마부>는 1961년에 개봉한 영화다. 마부인 아버지는 남에게 말을 빌려 짐 나르는 일을 한다. 혼자 4남매를 키우며 고생이 많다. 고시 공부하는 큰아들은 아버지의 희망이다. 벌써 3년째 낙방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품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말 못하는 큰딸은 시집을 보냈으나 늘 신경 쓰인다. 남편에게 맞아 도망올 때마다 아버지는 딸을 타일러 집으로 다시 보내곤 했다. 셋째 옥희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인생 역전하겠다는 꿈을 품고 사는 처녀다. 매일 동네에서 사고만 치는 막내아들도 아버지에겐 걱정거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부의 자식들과 마부의 이야기가 화면에서 펼쳐졌다.
자리에 앉은 관객들이 흑백 화면으로 목을 길게 빼고 빠져든다. 웅성웅성 이야기하는 자근자근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큰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영화관은 조금 시끄러웠다가 다시 조용해지고를 반복했다. 낯설고 생소한 흑백 영화에 익숙한 듯 먼 이야기 같은 60년대 생활 모습이 펼쳐진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나와서 봤어. 다락원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 부회장인데, 자꾸 다니다 보니까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하더라고. 세상에 그때 <맨발의 청춘>에는 엄앵란이하고 신성일이하고 나와가지고. 그 사람들 지금 모습만 보다 옛날 모습을 보니까 왜 이리 재미있어. 아이고. 세월이 참 빨라.”
140여 명이 함께하는 노래교실의 부회장인 김복열 씨의 이야기다. 김복열 부회장은 올해 여든이다. 오늘은 김복열 부회장이 노래교실 회원 몇의 입장권을 끊어준 날이다.
“얼마 하지도 않는 거, 한 번 보면 얼마나 좋아. 올 때마다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고. 이렇게 싸게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야 힘이 나고 그렇지 않겠어? 나는 여기가 참 고맙고 그래. 젊은 시절에야 애들 공부시키느라 바빠서 영화관 같은 데 다닐 시간이 있었나. 가끔 보고 싶으면 애들이랑 대전에 나가고 그랬는데, 영 정신없어서 그렇더라고.”
김복열 부회장이 열심히 다닌다는 노래교실은 금산 다락원에서 운영한다. 금산 다락원은 2004년 개원한 문화복지건강센터다. 생명의 집(문예회관), 건강의 집, 만남의 집, 문화의 집, 노인의 집, 장애인의 집, 청소년의 집, 여성의 집, 농민의 집, 스포츠센터, 인삼고을 도서관, 기적의 도서관, 청산회관 등 다양한 시설이 늘어서 있다. 그곳을 통틀어 금산 다락원이라고 부른다. 다락원에서는 금산군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수많은 금산군민이 다락원을 이용한다.
“금산군 인구 대부분이 금산읍에 밀집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락원이 접근성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죠. 그런데 사실 이곳도 꾸준히 활동하는 분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려요. 한 분이 여러 개 강좌와 시설을 이용하시니까요. 다니다 보면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시는 거죠. 청산아트시네마를 만들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락원 이용자뿐만 아니라 이용하지 못했던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죠. 아무래도 수업이 아니고, 영화를 보는 거니까 더 쉽게 다가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금산 다락원 공연기획팀 조인호 음향감독
2012년 말 기준으로 금산군 인구는 56,804명, 그중 23,962명이 금산읍에 산다. 2004년부터 지난 10년간 많은 사람이 다락원을 이용했다.
“2005년부터 다락원에서 예술아카데미를 운영했어요. 클래식 악기를 배우는 아카데미였는데, 그냥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도록 열어 놨어요. 처음엔 중구난방이었죠. 몇 명 되지도 않았고, 중간에 하다 나가는 분들도 계셨고요. 어르신부터 학생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어요. 악기 배우고 싶어도 비싸잖아요. 제대로 가르치는 곳도 몇 곳 없고요. 정말 전문 강사랑 지역에 계신 교수님들이랑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했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까 배우는 사람도 늘고, 점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꾸준히 한 사람들은 정말 썩히기 아까운 실력이 된 거예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어요. 금산 필하모닉오케스트라라고, 2010년에 창단했어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요. 아카데미에서 수업받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도 있고요. 그전까지는 여기서 예고에 가는 학생이 드물었거든요. 그런 친구들 보면 정말 뿌듯하죠.”
흑백화면, 영화 <마부>
지난 7월, 청산회관에 들어참 금산 사람들(사진제공 금산 다락원)
급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만 해서 아카데미를 운영한 것이 아니었다.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보니 실력 있는 사람이 보였고, 그래서 신청자를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오케스트라는 다락원에서 하는 행사 무대에 올라 자리를 빛내기도 한다.
“모이다 보면 신기하게 그중에 꼭 적극적인 분이 계세요. 자연스럽게 리더가 만들어지죠.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모여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요. 사실은 오케스트라도 저희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청산아트시네마도 그렇게 오래 보고 시작했어요. 만들면서 걱정이 많았죠. 되겠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희 다락원에서 하는 게 대부분 그래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바라면 안 되더라고요.”
도시에서도 운영이 어려운 예술영화관을 군에서 한다고 하니 반대도 많았다. 이왕 하려면 많은 사람이 와서 볼 수 있는 상업영화를 상영하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어떤 확신이 있었다. 길게 보면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정해진 시간에 상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여겼다. 건물을 새로 짓고, 뭔가 더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있는 공간을 활용했고, 상시 상영보다는 날짜를 정해서 상영하기로 했다.
“영화를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은 여기에서 뭘 하는지 기다렸다가 보는 게 아니라 대전에 있는 영화관으로 가겠죠. 정말 유명한 영화나 한번 나가서 볼까 싶은 정도고요. TV나 컴퓨터 등 영화 볼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좀 달라요. 영화 보러 나가기도 힘들고, 대전까지 가기에는 불편하고, 번잡하잖아요. 또 금산에 어르신들이 더 많으니까 실버명화극장이라고 해서 흑백 영화 세 편을 선정해 틀었던 거예요.”
지난 7월 22일 개관한 금산 청산아트시네마는 8월 말까지 흑백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맨발의 청춘>, <마부>와 독립영화 <길 위에서>, <콰르텟>을 상영했다. 오후 두 시에 운영하는 실버명화극장에서는 흑백 영화 세 편을 7~8월에 걸쳐 상영했다. 오후 여덟 시에 운영하는 예술영화관에서는 두 편의 독립영화를 상영했다. 실버명화극장에는 55세 이상 어르신만 모셨고, 예술영화관은 금산군민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에는 군에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어릴 때 보는 세상이 얼마나 좁겠어요. 더구나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접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많지 않아요. 청소년들이 상업영화 말고 조금 다른 영화도 보고 자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어요. 더 다양한 세계를 접하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다 예고에 간 친구처럼 영화를 보고, 영화 관련된 꿈을 품는 친구들이 생길 수 있잖아요.”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찾아서 살려고!”
30분가량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 천천히 운동 삼아 왔다며 수줍게 웃는 백서운 할머니는 올해 일흔아홉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인삼 덕분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금산인삼센터에서 인삼을 팔았다. 한평생 ‘새끼’들을 위해 살았다. 올해부터는 내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 노래 교실, 체조 교실에도 몇 번 나갔다. 영화 관람하러 온 것은 처음이다.
“기다리시면 됩니다.”
조인호 음향감독의 이야기다. 주민과 함께하고, 주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다리면 된다. 다락원에서는 그동안 그런 마음으로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청산아트시네마도 그렇게 시작했다. 주민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기에 다른 무엇보다 주민의 편의와 성격을 고려한다.
“이런 게 관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주민이 더 편하게 이용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을지, 그것만 먼저 생각하면 돼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