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연극 <곰팡이>

가족이라는 두 글자는 늘 마음을 쑤신다. 아프게 콕콕, 데면데면 무관심으로 점철되기도 하고 또 마냥 행복하기도 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니 가족이라는 것이 특별한 이유일 것이다. 연극 <곰팡이>는 2014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 여덟 번째 작품으로 정미진 극작에 정우순이 연출을 맡았다. 연극은 가족 사이 갈등을 유쾌하게 때론 진지하게 풀어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극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이 등장한다. 무능한 아빠, 그런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는 보험왕 엄마,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는 아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음직 한 사연을 가진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가족이다. 엄마와 아들은 얼굴을 마주하기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힐난한다. 고래 싸움에 말 한마디 못하는 아빠는 두 사람 사이에 낀 등 터진 새우다. 곰팡이 같은 놈이라며 아들을 비난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위해 수천만 원 합의금을 내어 놓는다. 갈등의 축은 분명하다. 엄마와 아들, 그리고 둘 사이를 중재 아닌 중재하는 아빠가 있다.

  

  

더 아픈 상처

가족이라 더 편한 것이 있다. 가족이니까 뭐든 이해하겠지 하는 마음에 한번 낼 화도 두 번 내고, 삼켜야 할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별다른 이유 없이 가족을 탓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연극 속 엄마와 아들이 바로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진다. 날카로운 말은 결국 ‘모두 다 너 때문이야.’라는 원망의 말로 본모습을 드러낸다. 엄마는 자신의 하나뿐인 남동생이 죽은 것도, 힘들게 돈을 버는 이유도 사고 치는 아들과 무능한 남편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들은 자신이 이렇게 방황하는 모든 이유를 엄마에게서 찾는다. 엄마와 아들은 서로를 탓하며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그 원망은 더 무겁게 그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저 기억 너머

아들은 기억한다. 그때 그 사건을 말이다. 자신 때문에 삼촌이 죽었다. 단순한 장난이었다. 정말 죽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후 엄마는 변했다. 자신과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 대하는 태도가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다. 이후 세 사람은 단 한 번도 그 일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렇게 가족은 멀어졌다. 차마 직면하기 어려운 진실이 있다.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없이 편하기도 하지만 한없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게 가족은 생채기 난 가슴을 입을 꾹 닫은 채 마치 자기 혼자 짊어져야 할 일인 것 마냥 끌어안는다. 내뱉어야 할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원망하는 말로 그 말을 대신한다. 저 기억 너머 엉켜버린 실타래가 더 복잡하게 엉켜버린다.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받나요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가족 안에서 시작된다. 불편했던 그 날을 가족은 떠올린다. 그리고 바라본다. 서로를 원망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위로의 말을 건넨다. 거칠고 조금 투박하지만 엄마와 아빠, 아들은 안다. 그동안 서로를 탓했던 비난의 말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가족은 서로를 위로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가족이라는 이유

가족은 우리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고, 누군가는 그 울타리 안에서 가족과 영원히 함께했으면 바라기도 한다. 내 주변 사람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쉽게 그렇다 이야기할 수 없는 가족. 정말 소중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미운 복잡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연극 <곰팡이>는 아주 보통의 가족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을 보여준다. 조금 급하게 결말을 맺은 것 같아 찝찝함이 들지만, 관객에게 행복한 가족에 관한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한다.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말이다. 

  

  


글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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