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2호] 프롤로그_박공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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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해 종이에다가 또 한복에다가 그림을 그리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 결혼을 하고, 예쁜 두 딸을 낳았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그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깨끗한 옷을 해 입혔다. 그러기를 30여 년, 초로의 나이가 된 그는 산마루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 환갑에 가까워진 어린 소녀는 다시 붓을 잡았다. 지난 7월, 제16회 보문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박공효 작가의 얘기다.

  

   

‘누구의 엄마’에서 인간 ‘박공효’로

대전 중구문화원 2층 강의실에서 박공효 작가를 만났다. 박공효 작가는 수채화 교실 수업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함께 분주하게 그림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고운 다홍색 자켓을 걸치고 다홍색 립스틱을 바른 박공효 작가에게서는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여유가 묻어났다. 보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해 어엿한 ‘작가’가 되었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주한 박공효 작가는 친구 엄마처럼, 혹은 나의 엄마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다.

“스물아홉에 첫째를 낳았어요. 두 딸의 엄마가 되고나니 행동 하나도 조심스러워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림이란 것은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이들만 잘 되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딱 55세가 넘어가면서 환갑이 다가오는 게 실감이 났어요. 그때서야 알았죠. 아, 지금까지 열심히는 살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은 하나도 없구나.”

58세가 됐을 때 박공효 작가는 무작정 대전 대흥동에 있는 중구문화원을 찾았다. 문화원에 비치된 각종 교육 시간표를 이리저리 들춰본 다음에 수강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수채화반에 등록했다. ‘누구의 엄마’에서 다시 ‘박공효’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은 매주 화요일 오전부터 점심께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그 무렵 박공효 작가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강의실에 늦게까지 남아 노을이 질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집에 돌아가서도 그림을 그렸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또 그렸다.

    

    

작가 박공효가 되다

“슬럼프도 있었어요. 내 마음대로 그림이 안 그려지니까요. 물과 물감이랑 늘 싸우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박공효 작가는 공모전에도 꾸준히 출품을 했다. 수채화반 강사인 중구문화원 민동기 부원장이 계속해서 권유한 덕이 컸다. 광주무등미술대전, 대한민국수채화대전, 코파미술대전 등 7~8개의 공모전에 참여하며 입선,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중구문화원 제16회 보문미술대전 대상 수상은 박공효 작가가 붓을 잡은 이래 얻은 가장 큰 결실이다. 수상작 ‘자연의 바람’은 그림의 주제를 박공효 작가가 느낀대로 표현한 비구상 형태의 작품이다. 청색과 보라색이 주를 이루는 몽환적인 느낌이 인상적이다.

그림을 그린 지 3년째가 되던 60세 때, 박공효 작가는 대전에서 고향인 충남 금산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땀 흘려 농사 짓고, 종종 하늘을 보고, 매일 그림을 그린다.

“요즘요? 되게 좋아요. 아주 행복합니다. 도시에 살면 늘 같은 것만 보이잖아요. 거기서는 매일 눈 뜨면 산, 강, 하늘의 모습이 날마다 변해요. 밭을 돌보다가 문득 허리를 폈을 때, 산에 걸쳐 있는 운무는 또 어찌나 아름다운데요. 햇살도 매일 매일 변한다니까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산에 오르고 싶을 때 오르고, 그러다가 매주 화요일에는 어김없이 대전 중구문화원으로 외출한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 작가들과 담소도 나누고, 전시회도 다닌다. 집 밖으로 나서는 것도,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도 두려워하던, 5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박공효’의 삶이다.

   

   

“지금처럼만 건강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칠순 때는 개인전을 하고 싶어요.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만 바꿔도 달라지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이제는 나이 들어서 심심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안해요.”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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